로베르토 클레멘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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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베르토 클레멘테는 1934년 푸에르토리코에서 태어난 메이저 리그 야구 선수로, 1972년 비극적인 사고로 사망했다. 그는 1955년 피츠버그 파이리츠에서 메이저 리그에 데뷔하여 1972년까지 활약하며 통산 3000안타를 기록했다. 클레멘테는 4번의 수위 타자, 12번의 골드글러브상, 1966년 MVP, 1971년 월드 시리즈 MVP를 수상하며 뛰어난 타격과 수비 능력을 선보였다. 또한, 그는 사회봉사에도 헌신하여 니카라과 지진 피해자를 돕기 위해 구호품을 전달하려다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고,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이 제정되었으며,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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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클레멘테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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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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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 우익수 |
타격 | 우타 |
투구 | 우투 |
출생일 | 1934년 8월 18일 |
출생지 | 푸에르토리코, 카롤리나, 바리오 산안톤 |
사망일 | 1972년 12월 31일 |
사망 장소 | 푸에르토리코, 이스라베르데 해안 |
데뷔 리그 | MLB |
데뷔일 | 1955년 4월 17일 |
데뷔 팀 | 피츠버그 파이리츠 |
최종 리그 | MLB |
최종일 | 1972년 10월 3일 |
최종 팀 | 피츠버그 파이리츠 |
통계 | |
타율 | .317 |
안타 | 3,000 |
홈런 | 240 |
타점 | 1,305 |
선수 경력 | |
팀 | 피츠버그 파이리츠 (1955–1972) |
수상 내역 | |
올스타 | 15회 (1960–1967, 1969–1972) |
월드 시리즈 우승 | 2회 (1960, 1971) |
내셔널 리그 MVP | 1966년 |
월드 시리즈 MVP | 1971년 |
골드 글러브 | 12회 (1961–1972) |
내셔널 리그 타격 챔피언 | 4회 (1961, 1964, 1965, 1967) |
피츠버그 파이리츠 No. 21 | 영구 결번 |
파이리츠 명예의 전당 | 헌액 |
명예의 전당 | |
종류 | 국가 |
헌액일 | 1973년 |
득표율 | 92.7% |
헌액 방법 | 특별 선거 |
2. 생애
로베르토 클레멘테는 1934년 8월 18일 푸에르토리코 카롤리나에서 태어났다.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는 부모님 사이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클레멘테는 가난한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3] 어릴 때부터 야구에 재능을 보여 소프트볼 선수로 활동하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계약하며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4]
1954년 브루클린 다저스와 계약했지만,[98] 당시 다저스는 재키 로빈슨의 활약으로 흑인 선수들이 많아 '4000달러 이상 계약금 신인 선수' 규정 때문에 클레멘테를 숨기고 마이너 리그에만 출전시켰다.[140] 이후 피츠버그 파이리츠로 이적하여 1955년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다.[102]
클레멘테는 뛰어난 실력으로 1960년 월드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고, 1961년에는 수위 타자를 차지했다.[105] 1966년 내셔널 리그 MVP를 수상했으며, 1971년 월드 시리즈에서는 MVP에 선정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108][115] 1972년에는 통산 3000안타를 달성했다.[120]
1972년 12월 23일 니카라과 지진 피해자를 돕기 위해 구호 물품을 싣고 가던 중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44][47][48] 그의 등번호 21번은 1973년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130]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영구 결번으로 1973년 지정.
2. 1. 유년 시절
1934년 8월 18일 푸에르토리코 카롤리나의 바리오 산 안톤에서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인 아버지 멜초르 클레멘테와 어머니 루이사 워커 사이의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클레멘테의 집안은 매우 가난했고, 아버지와 형제들은 섬 북동부에 위치한 농장에서 감독관으로 일하거나 트럭에 짐을 싣고 내리는 일을 했다.[3] 클레멘테는 어릴 때부터 야구에 관심을 보였고, 형이 출전하는 소년 야구 리그전에 따라가서 보고 배우며 야구를 시작했다.[94]14살 때, 바리오 산 안톤에서 야구하는 모습을 본 로베르토 마린에게 스카우트되어 세요 로호 팀에서 소프트볼 유격수로 2년간 뛰었다.[4] 훌리오 비스카론도 고등학교에 다니며 육상 경기, 창던지기, 높이뛰기 등에서 활약하며 올림픽에서 푸에르토리코를 대표할 정도로 실력이 좋다고 여겨졌다.[5] 하지만 클레멘테는 야구에 집중하기로 결정하고, 푸에르토리코 아마추어 리그의 훈코스 시를 대표하는 페르디난드 훈코스 팀에서 뛰었다.[6]
어린 시절,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강견 우익수 '칼 푸릴로'를 가장 좋아했던 클레멘테는 매일 몇 시간씩 벽에 고무 공을 던지며 어깨를 단련했다.[97] 고등학교를 졸업한 클레멘테에게는 9개 이상의 MLB 구단에서 입단 제의가 들어왔다.[96]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가 3만 달러를 제시했지만, 클레멘테는 자신을 먼저 발견한 다저스와 계약금 1만 달러에 계약했다.
2. 2. 프로 선수 시절
1954년, 클레멘테는 브루클린 다저스와 계약금 10,000달러, 연봉 5,000달러에 계약했다.[98] 하지만 당시 다저스는 1947년 재키 로빈슨의 데뷔로 인종 차별 장벽을 허문 덕분에 1950년대에 뛰어난 흑인 선수들이 많았다.[140] 이 때문에 '4000달러 이상을 받고 입단한 신인 선수는 메이저 리그 로스터에 들지 못하면 룰5 드래프트의 대상이 된다'는 규정을 지키기 위해 클레멘테의 존재를 숨기고 마이너 리그 경기에도 내보내지 않았다.하지만 다저스에서 구단 단장으로 일했던 브랜치 리키가 피츠버그 파이리츠 단장으로 부임하면서 클레멘테를 '룰 5 드래프트'에서 지명했다.[102] 1955년 4월 17일, 클레멘테는 피츠버그 소속으로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다.
클레멘테는 데뷔 첫 해인 1955년 124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55, 5홈런, 47타점을 기록했고,[103] 1956년에는 리그 3위인 타율 .311을 기록하며 성장세를 보였다. 그러나 1957년부터 3년간은 지병인 허리 통증과 상대 투수들의 연구로 인해 부진을 겪었다.[104]
1960년, 클레멘테는 타율 .314, 16홈런, 94타점으로 개인 최고 기록을 경신하며 올스타에 처음으로 선정되었다. 피츠버그는 월드 시리즈에서 뉴욕 양키스를 꺾고 35년 만에 우승을 차지했고, 클레멘테는 7경기에 모두 출전하여 팀 최다인 9안타를 기록하며 우승에 기여했다.[105]
1961년, 클레멘테는 타율 .351로 첫 수위 타자 타이틀을 획득했다. 201안타, 30개의 2루타, 23홈런, 100득점 등 개인 기록을 경신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올스타에서는 처음으로 선발 출전하여 첫 안타를 기록하기도 했다.
1964년과 1965년에도 각각 타율 .339와 .329로 수위 타자를 차지하며 최고의 타자로 자리매김했다. 1966년에는 29홈런, 119타점을 기록하며 내셔널 리그 MVP를 수상했다.[108] 1967년에는 개인 최고 타율인 .357로 4번째 수위 타자 타이틀을 획득했다.
1970년 7월 24일, 파이리츠 구단은 '로베르토 클레멘테 나이트'를 개최하여 그의 활약을 축하했다.[111][112] 클레멘테는 기념품 대신 피츠버그의 소아과 의사를 위한 기부를 요청했다.[113]
1971년, 피츠버그는 월드 시리즈에서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고, 클레멘테는 타율 .414를 기록하며 월드 시리즈 MVP에 선정되었다.[115]
1972년 9월 30일, 클레멘테는 존 매트릭을 상대로 2루타를 쳐서 통산 3000안타를 달성했다.[120]
클레멘테의 등번호 '''21'''번은 1973년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130]
2. 2. 1. 푸에르토리코 프로야구 리그 (1952-1954)
로베르토 클레멘테는 1952년 10월 9일, 만 18세에 푸에르토리코 프로야구 리그(LBPPR)의 겨울 리그 팀인 산투르세 카르레헤로스(Cangrejeros de Santurce)와 계약하며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7] 첫 시즌에는 벤치 선수였으나, 다음 시즌에 선발 라인업으로 승격되어 팀의 리드오프 타자로 .288의 타율을 기록했다.[7]브루클린 다저스는 클레멘테가 푸에르토리코 리그에서 활동하던 중, 그에게 1만 5천 달러(보너스 1만 달러, 리그 최저 연봉 5천 달러)의 계약을 제안했고, 클레멘테는 1954년 2월 19일에 계약을 맺었다.[8]
2. 2. 2. 마이너 리그 (1954)
1954년 시즌은 다저스 산하의 에서 뛰었다. 선수로서의 능력은 인정받았지만, 당시 다저스에는 메이저 리그 전체 흑인 선수 20명 중 5명이 있을 정도로 흑인 선수의 비율이 매우 높았다. 그래서 백인 팬들의 관객 동원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다저스는 클레멘테를 마이너 리그에서 뛰게 했다.[99] 마이너 리그에서는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해, 친구에게 "우리 팀이 초반에 5점이나 넣으면, 나는 이제 멤버에서 제외돼. 나는 감독에게 미움을 받는 것 같아"라고 말했다.[100] 그러나 이는 당시 계약금 4,000달러 이상의 선수는 처음 2년간 메이저 리그 25인 로스터에 들어 있지 않으면 타 구단으로부터 영입될 수 있다는 제도 때문이었다.[101]하지만 다저스 구단은 1947년 재키 로빈슨의 데뷔로 인종 차별의 장벽을 가장 먼저 허문 덕분에, 1950년대에 뛰어난 흑인 선수들이 넘쳐나고 있었다는 문제가 있었다.[140] 이 때문에 '4000달러 이상을 받고 입단한 신인 선수는 메이저 리그 로스터에 들지 못하면 룰5 드래프트의 대상이 된다'는 규정을 지키기 어려웠다. 다저스는 빈자리가 생길 때까지 클레멘테의 존재를 숨기는 방법을 택했고, 마이너 리그 경기에도 내보내지 않았다.
피츠버그 파이리츠 스카우트는 투수 보강을 위해 몬트리올 로열스의 조 블랙 영입을 노리고 있었지만, 클레멘테를 직접 보고[102] 클레멘테 영입을 노리게 되었다. 다저스에서 구단 단장직으로 일했던 브랜치 리키가 피츠버그 파이리츠 단장으로 있었는데, 리키 단장이 클레멘테를 찾아내 '룰5 드래프트'에서 그를 지명했다. 당시 피츠버그는 만년 하위권 팀으로, 새로 부임한 브랜치 리키 단장의 리빌딩 작업이 한창이었다.
클레멘테의 보너스가 4,000달러를 초과했기 때문에 그는 '보너스 베이비'로 간주되었다. 다저스는 그를 메이저 리그에서 2년간 벤치에 앉히는 대신, 인터내셔널 리그 트리플 A 제휴팀인 몬트리올 로열스에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다저스가 감독 맥스 메이컨에게 룰 5 드래프트에서 그가 지명되는 것을 막기 위해 클레멘테를 드물게 기용하라고 지시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메이컨 본인은 이를 부인했다. 박스 스코어를 보면 메이컨이 클레멘테를 다른 외야수들과 마찬가지로 플래툰 시스템으로 기용했음을 알 수 있다.[10]
초기에 기후와 언어 차이로 어려움을 겪었던 클레멘테는 치코 페르난데스와 토미 라소다, 조 블랙과 같은 이중 언어를 구사하는 팀원들의 도움을 받았다.
로열스에서 87경기에 출전한 클레멘테는 .257의 타율에 홈런 2개를 기록했다.[15] 그의 북미 야구 경력 첫 홈런은 1954년 7월 25일에 나왔다. 클레멘테는 연장전에서 끝내기 홈런을 터뜨렸는데, 수비 교체로 경기에 들어선 후 첫 타석에서 홈런을 쳤다. 그의 유일한 다른 마이너 리그 홈런은 9월 5일에 나왔다. 그의 20번째 생일인 8월 8일에는 놀라운 외야 보살을 기록하며 홈으로 쇄도하는 주자를 잡아내 동점 득점을 막았다.[16]
2. 2. 3. 피츠버그 파이리츠 (1955-1972)
1954년 브루클린 다저스와 계약한 클레멘테는 산하 마이너 리그 팀에서 뛰었다.[98] 당시 다저스는 1947년 재키 로빈슨의 데뷔로 인종 차별 장벽을 허문 덕분에 1950년대에 뛰어난 흑인 선수들이 많았다.[140] 그래서 '4000달러 이상을 받고 입단한 신인 선수는 메이저 리그 로스터에 들지 못하면 룰5 드래프트의 대상이 된다'는 규정을 지키기 위해 클레멘테의 존재를 숨기고 마이너 리그 경기에도 내보내지 않았다.[101]하지만, 다저스에서 구단 단장으로 일했던 브랜치 리키가 피츠버그 파이리츠 단장으로 부임하면서 클레멘테를 '룰5 드래프트'에서 지명했다.[102] 1955년 트레이드로 피츠버그에 입단한 클레멘테는 20살의 나이로 곧바로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는데, 이는 히스패닉 라티노계 선수 최초의 메이저 리그 데뷔였다.
클레멘테는 외야 수비에서 강한 송구를 자랑했지만, 타격에서는 등 부상과 영어 미숙으로 어려움을 겪었다.[103] 그는 '배드볼 히터'로 유명했는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투수 후안 마리칼은 '발목 위부터 귀 아래까지가 히팅 존'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엄청난 노력으로 이를 극복하며 타율을 높여갔다. 데뷔 6년 차에는 0.314의 타율과 16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1960년, 피츠버그는 월드 시리즈에서 뉴욕 양키스를 꺾고 우승했다. 클레멘테는 8회말 2사 후 적시타를 쳐 7-7 동점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105]
1961년, 타격 코치 조지 시슬러는 클레멘테에게 무거운 방망이를 쓰게 했고, 이는 적중하여 클레멘테는 0.351의 타율로 타격왕에 올랐다.[35] 1961년부터 1972년까지 13년 동안, 클레멘테는 1968년을 제외하고는 0.312 이하의 타율을 기록한 적이 없었다.
1961년부터 1967년까지 7년간 클레멘테는 4차례 타격왕을 차지했고, 1965년에는 리그 MVP를 수상했다. 1971년 월드 시리즈에서는 0.414의 타율로 MVP에 올랐고, 피츠버그는 다시 한번 우승을 차지했다.[115]
클레멘테는 통산 타율 0.317을 기록했지만, 출루율은 0.359에 불과했다. 1972년에는 3000안타를 달성하고 시즌을 마쳤다.[120] 38세의 나이에도 꾸준한 기량을 보였고, 12년 연속 골드 글러브를 수상했다.
클레멘테는 그의 이름 철자 수가 21개라는 이유로 등번호 21번을 달았다.[20][21] 비시즌에는 푸에르토리코 프로 야구 리그에서 활동했으며, 미국 해병대 예비군으로 복무하기도 했다.[22][23][24][25]

1950년대 피츠버그는 힘든 시즌을 보냈지만, 1958년에 1948년 이후 처음으로 승리 시즌을 기록했다. 클레멘테는 1955년 4월 17일 브루클린 다저스와의 경기에서 등번호 13번을 달고 데뷔했다. 그는 인종 및 민족적 갈등으로 좌절했지만, "나는 인종차별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26][27]
1956년 7월 25일, 클레멘테는 포브스 필드에서 9회에 3점 차로 뒤진 상황에서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을 쳐내며 끝내기, 인사이드 더 파크 만루 홈런을 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28][29][30]

1960 시즌 초, 클레멘테는 .353의 타율로 리그를 이끌었고, 5월에만 14개의 장타와 25개의 타점을 기록하여 내셔널 리그의 이달의 선수로 선정되었다.[32] 8월 5일 포브스 필드에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윌리 메이스가 선두 타자로 장타를 치는 것을 막는 과정에서 우익수 벽에 충돌하여 턱에 다섯 바늘을 꿰매고 5경기 결장해야 했다.[33]
1961년 스프링 트레이닝 동안, 피츠버그의 타격 코치 조지 시슬러의 조언에 따라 클레멘테는 스윙 속도를 늦추기 위해 더 무거운 배트를 사용하여 타격 기술을 수정하려고 시도했다. 1961 시즌 동안 클레멘테는 두 개의 올스타 게임 중 첫 번째 게임의 NL 선발 우익수로 지명되어 4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35]
1961 시즌 이후, 그는 푸에르토리코의 폰세 출신인 올랜도 세페다와 함께 푸에르토리코로 여행을 떠났다. 두 선수가 도착했을 때 18,000명의 사람들이 그들을 맞이했다.

클레멘테는 1960년대에 1968년을 제외하고 모든 시즌에서 올스타로 선정되었고, 1961년부터 그의 마지막 12시즌 동안 매 시즌 골드 글러브 수상자가 되었다. 그는 NL 타격왕을 네 번(1961, 1964, 1965, 1967년) 차지했고, 1966년에는 리그의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MVP 상을 수상하여 .317의 타율, 개인 최고 기록인 29개의 홈런, 119타점을 기록했다.[108] 1967년에는 클레멘테는 개인 최고 기록인 .357의 타율, 23개의 홈런, 110타점을 기록했다.
1970년 7월 24일, 파이리츠 구단은 '로베르토 클레멘테 나이트'를 개최하여 그의 활약을 축하했다.[111][112] 클레멘테는 기념품 대신 피츠버그의 소아과 의사를 위한 기부를 요청했다.[113]
1971년, 팀은 11년 만에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고, 클레멘테는 타율 .414로 월드 시리즈 MVP에 선정되었다.[115]
1972년 9월 30일, 클레멘테는 존 매트릭으로부터 2루타를 쳐서 3000안타를 달성했다.[120]
2. 3. 죽음
1972년 시즌이 끝난 후 12월 23일, 니카라과 마나과에서 큰 지진이 발생했다. 평소 사회봉사에 헌신적이었던 클레멘테는 지진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클레멘테가 보낸 구호품은 푸에르토리코 군대가 중간에서 가로채 이재민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다.[44] 이에 12월 31일, 클레멘테는 직접 세 번째 구호품을 싣고 비행기에 올랐다. 그러나 낡은 DC-7 수송기는 과도한 화물 적재, 엔진 결함, 악천후로 인해 이륙 직후 엔진에서 화염이 발생하여 바다로 추락했다.[47][48]수색 결과 조종사의 시신은 발견되었지만, 클레멘테의 시신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48] 이 소식에 그의 고향 푸에르토리코는 물론 중남미 국가들까지 큰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
클레멘테의 팀 동료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매니 산구일렌은 추도식에 불참하고, 클레멘테의 비행기가 추락한 바다에 직접 뛰어들어 수색 작업을 벌이기도 했다.[48] 당시 몬트리올 엑스포스 투수였던 톰 워커는 클레멘테의 도움 요청으로 비행기에 짐을 싣는 것을 도왔으나, 클레멘테가 싱글이었던 워커에게 새해 전야를 즐기라며 비행기에 타지 말라고 하여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50][51]
ESPN의 ''스포츠센추리'' 인터뷰에서 클레멘테의 아내 베라는 남편이 젊은 나이에 죽을 것 같다는 말을 여러 번 했었다고 회고했다.[26]
3. 사후
푸에르토리코 정부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망한 로베르토 클레멘테를 기리기 위해 3일간의 국민 애도 기간을 정했다. 보위 쿤 메이저 리그 커미셔너 역시 그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사회봉사 공로상에 그의 이름을 따서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을 만들었다.
1973년 명예의 전당 위원회가 5년의 유예기간을 면제하면서 클레멘테는 이듬해 곧바로 92.69%의 득표율로 헌액됐다. 미국 정부는 클레멘테를 추모하기 위해 그의 얼굴이 들어 있는 우표를 발행했다.
2005년 메이저 리그는 메이저 리그에서 활약했거나 활약 중인 라틴 아메리카 출신 선수 중에서 선정된 야구 올스타 팀으로, 라틴 아메리카 출신 선수들이 메이저 리그 역사에 남긴 업적을 기리기 위해 팬 투표를 통해 선정한 라티노 레전드 팀을 발표하였는데, 여기서 외야수 부분에 로베르토 클레멘테가 뽑혔다.
오늘날 중남미 국가의 야구인들 대부분은 로베르토 클레멘테를 '영웅'으로 기억하고 있다. 우익수로서도 뛰어난 강견을 자랑했으며, 그 강견은 "'''라이플 암'''"이라고 불리며 상대 주자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1경기 최다 보살 5회는 내셔널 리그 최다이다.[137] 1961년에는 시즌 27보살을 기록했고, 메이저 리그 생활 18년 동안 통산 267보살을 기록했다. "펜실베이니아에서 던진 공이 뉴욕까지 닿는다", "클레멘테가 지키는 우익으로 타구가 날아간다면 관중석이 아닌 이상 진루를 포기하라"는 말도 있었다. 또한, 클레멘테의 플레이를 실제로 본 판초 이토는 "현대 메이저 리그에서 강견이라고 불리는 선수들과는 비교도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클레멘테는 외야수로서 최다 타이인 골드글러브상을 12회 수상했다.[138]
4. 선수로서의 특징
로베르토 클레멘테는 뛰어난 야구 선수로, 공격과 수비 양면에서 모두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윌리 메이스와 함께 외야수 부문 최다 골드 글러브상 (12회) 수상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54][55] 올스타에 13시즌 동안 15회 선정되었으며,[56] 1966년 내셔널 리그 MVP와 내셔널 리그 이달의 선수 3회(1960년 5월, 1967년 5월, 1969년 7월)에 선정되었다. 피츠버그 파이리츠를 두 번의 월드 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고, 1971년 월드 시리즈 MVP를 수상했다.[35]
통산 2번의 한 경기 3홈런, 8번의 한 경기 5안타를 기록했다.[57]
범주 | G | 타율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도루 | 도루실패 | 볼넷 | 삼진 | 출루율 | 장타율 | OPS | 실책 | 보살 | 수비 | 수비율 |
---|---|---|---|---|---|---|---|---|---|---|---|---|---|---|---|---|---|---|---|---|
통산 | 2,433 | .317 | 9,454 | 1,416 | 3,000 | 440 | 166 | 240 | 1,305 | 83 | 46 | 621 | 1,230 | .359 | .475 | .834 | 142 | 269 | 4,796 | .972 |
4. 1. 타격
클레멘테는 데뷔 초 외야 수비에서는 강한 어깨를 자랑했지만, 타격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고질적인 등 부상과 몸 상태 때문에 가벼운 배트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영어 미숙으로 미국 생활과 메이저 리그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재키 로빈슨처럼 인종 차별, 협박, 빈볼에도 시달렸다.[53]클레멘테는 '배드볼 히터'로 유명했는데, 후안 마리칼은 그의 히팅 존을 '발목 위부터 귀 아래'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하지만 엄청난 노력으로 배드볼 히팅을 극복하며 타격 기술을 발전시켰다. 데뷔 3년 차에 0.253이었던 타율은 6년 차에 0.314까지 상승했고, 처음으로 두 자릿수 홈런(16개)을 기록했다.
1960년 월드 시리즈에서 피츠버그 파이리츠는 뉴욕 양키스를 꺾고 우승했는데, 클레멘테는 8회말 2사 후 적시타로 출루하여 '할 스미스'의 동점 홈런에 기여했다.
1961년 타격코치 조지 시슬러는 클레멘테에게 무거운 방망이를 쓰게 했고, 이는 적중하여 0.351의 타율로 타격왕에 올랐고 23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1960년부터 1972년까지 1968년을 제외하고는 타율이 0.312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1961년부터 1967년까지 7년간 4차례 타격왕, 1번의 2위를 차지했고, 1965년에는 리그 MVP를 수상했다. 1971년 두 번째 월드 시리즈에서는 0.414의 맹타로 월드 시리즈 MVP에 올랐고, 팀의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클레멘테의 약점은 출루율이었다. 통산 타율 0.317에 비해 통산 출루율은 0.359에 불과했다.
1972년 3000번째 안타를 기록하고 시즌을 마쳤다. 38세였지만 꾸준한 기량을 보였고, 12번째 올스타전에 출전, 12년 연속 골드글러브를 수상했다.
클레멘테는 피츠버그 파이리츠에서 한 경기 최다 3루타(3개), 2경기 연속 최다 안타(10개) 등의 기록을 세웠다.[53] 윌리 메이스와 함께 외야수 부문 최다인 12개의 골드 글러브상을 수상했다.[54][55]
13시즌 동안 올스타로 15번 출전했고, 1966년 내셔널 리그 MVP, 내셔널 리그 이달의 선수 3회(1960년 5월, 1967년 5월, 1969년 7월)에 선정되었다. 두 번의 월드 시리즈 우승을 이끌었고, 1971년 월드 시리즈 MVP를 수상했다.[35]
통산 2번의 한 경기 3홈런, 8번의 한 경기 5안타를 기록했다.[57]
범주 | G | 타율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도루 | 도루실패 | 볼넷 | 삼진 | 출루율 | 장타율 | OPS |
---|---|---|---|---|---|---|---|---|---|---|---|---|---|---|---|---|
통산 | 2,433 | .317 | 9,454 | 1,416 | 3,000 | 440 | 166 | 240 | 1,305 | 83 | 46 | 621 | 1,230 | .359 | .475 | .834 |
4. 2. 수비
클레멘테는 강한 어깨를 바탕으로 뛰어난 외야 수비 능력을 자랑했다. 윌리 메이스와 함께 외야수 부문 최다 골드 글러브상 12회를 수상하였다.[54][55] 통산 269개의 보살을 기록했다.[35]G | 실책 | 보살 | 수비 | 수비율 |
---|---|---|---|---|
2,433 | 142 | 269 | 4,796 | .972 |
5. 유산
푸에르토리코 정부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망한 로베르토 클레멘테를 기리기 위해 3일간의 국민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보위 쿤 메이저 리그 커미셔너는 그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사회봉사 공로상에 그의 이름을 따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을 만들었다.[43]
1973년 명예의 전당 위원회는 5년의 유예기간을 면제했고, 클레멘테는 92.69%의 득표율로 헌액됐다. 미국 정부는 클레멘테를 추모하기 위해 그의 얼굴이 새겨진 우표를 발행했다.
2005년 메이저 리그는 메이저 리그에서 활약했거나 활약 중인 라틴 아메리카 출신 선수 중 야구 올스타 팀을 선정하는 라티노 레전드 팀을 발표했는데, 여기서 로베르토 클레멘테가 외야수 부문에 뽑혔다.
오늘날 중남미 국가의 야구인들 대부분은 로베르토 클레멘테를 '영웅'으로 기억하고 있다.
클레멘테는 선수 은퇴 이후 비시즌 동안 자선 활동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1972년 12월 23일 니카라과의 수도 마나과에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자, 클레멘테는 즉시 긴급 구호 항공편을 마련했다.[44] 그러나 구호 물품이 소모사 정부의 부패한 관리들에 의해 가로채져 지진 피해자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자,[45] 그는 구호 물품이 생존자들에게 전달되도록 하기 위해 네 번째 구호 항공편에 동행하기로 결정했다.[46]
그가 전세 낸 더글러스 DC-7 화물기는 기계적 문제, 부족한 비행 인원(항공 기술자와 부조종사 부족), 약 1905.09kg 과적 등의 문제가 있었다.[47] 이 비행기는 1972년 12월 31일 이륙 직후 푸에르토리코 이슬라 베르데 해안에서 엔진 고장으로 대서양에 추락했다.[48]
USCGC ''세이지브러쉬''가 주도하는 수색 및 구조 노력이 즉시 시작되었고,[49] 며칠 후 조종사의 시신과 비행기 동체의 일부가 발견되었다. 클레멘테의 빈 비행 가방이 회수되었으나, 클레멘테와 다른 세 명의 시신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48]
클레멘테의 팀 동료이자 절친한 친구인 매니 산구일렌은 추도식에 참석하지 않고 클레멘테의 비행기가 추락한 바다에 뛰어들어 팀 동료를 찾으려 했다.
당시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투수였던 톰 워커는 푸에르토리코 동계 리그에서 뛰면서 비행기에 짐을 싣는 것을 도왔는데, 클레멘테는 싱글이었던 워커가 새해 전야를 즐기기를 원해 비행기에 함께 타지 말라고 말했다.[50] 몇 시간 후, 워커는 클레멘테를 태운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소식을 들었다.[51]
클레멘테는 생전에 자신이 젊은 나이에 죽을 것 같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고 그의 미망인 베라가 ESPN 다큐멘터리 시리즈 ''스포츠센추리''에서 언급했다.[26] 1971년 올스타전 행사에서 통산 3,000안타를 언제 칠 것인지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하나님만이 당신이 얼마나 오래 여기 있을지 말씀하시니까요. 그래서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어요."라고 대답했다.[52]
그는 내셔널 리그에서 4번 수위 타자를 차지했고, 타율은 13번이나 상위 10위 안에 들었다. 통산 안타 수는 3000개이다. 그는 악구(惡球)를 잘 치는 타자로 유명했으며, 사야마 카즈오는 클레멘테를 요기 베라와 함께 "배드볼 히터"의 대표적인 인물로 꼽았다.
우익수로서 그는 "라이플 암"이라고 불리는 뛰어난 강견을 자랑했으며, 1경기 최다 보살 5회는 내셔널 리그 최다 기록이다.[137] 1961년에는 시즌 27보살을 기록했고, 메이저 리그 18년 동안 통산 267보살을 기록했다. "펜실베이니아에서 던진 공이 뉴욕까지 닿는다", "클레멘테가 지키는 우익으로 타구가 날아간다면 관중석이 아닌 이상 진루를 포기하라"는 말도 있었다. 클레멘테는 외야수로서 최다 타이인 골드글러브상을 12회 수상했다.[138]
그의 주요 수상 기록은 다음과 같다.
6. 기타
클레멘테는 1964년 11월 14일 베라 자발라와 카롤리나의 산 페르난도 교회에서 결혼했다. 슬하에 세 자녀를 두었는데, 1965년에 태어난 로베르토 주니어, 1966년에 태어난 루이스 로베르토, 1969년에 태어난 로베르토 엔리케이다. 베라 클레멘테는 2019년 11월 16일 7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클레멘테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2010년대에는 그를 가톨릭 교회에서 시성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는 내셔널 리그에서 4번 수위 타자를 차지했고, 타율은 연간 상위 10위 안에 13번이나 들었다. 통산 안타 수는 3000개이다. 악구(惡球)를 잘 치는 타자로 유명하며, 사야마 카즈오는 요기 베라와 함께 클레멘테를 "'''배드볼 히터'''"의 대표적인 인물로 꼽았다.
우익수로서도 뛰어난 강견을 자랑했으며, 그 강견은 "'''라이플 암'''"이라고 불리며 상대 주자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1경기 최다 보살 5회는 내셔널 리그 최다이다.[137] 1961년에는 시즌 27보살을 기록했고, 메이저 리그 생활 18년 동안 통산 267보살을 기록했다. "펜실베이니아에서 던진 공이 뉴욕까지 닿는다", "클레멘테가 지키는 우익으로 타구가 날아간다면 관중석이 아닌 이상 진루를 포기하라"는 말도 있었다. 또한, 클레멘테의 플레이를 실제로 본 판초 이토는 "현대 메이저 리그에서 강견이라고 불리는 선수들과는 비교도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클레멘테는 외야수로서 최다 타이인 골드글러브상을 12회 수상했다.[138]
수상 | 횟수 | 연도 |
---|---|---|
수위 타자 | 4회 | 1961년, 1964년, 1965년, 1967년 |
시즌 MVP | 1회 | 1966년 |
골드글러브상 | 12회 | 1961년 - 1972년 |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표창 | 1973년 (자격 1년차[139], 득표율 92.69%) | |
커미셔너 특별 표창 | 2006년 | |
월드 시리즈 MVP | 1회 | 1971년 |
베이브 루스상 | 1회 | 1971년 |
월간 MVP | 3회 | 1960년 5월, 1967년 5월, 1969년 7월 |
7. 통산 기록
로베르토 클레멘테는 피츠버그 파이리츠에서 한 경기 최다 3루타(3개)와 2경기 연속 최다 안타(10개) 등의 기록을 세웠다.[53] 윌리 메이스와 함께 외야수 부문 최다인 12개의 골드 글러브상을 수상했다.[54][55] 13시즌 동안 올스타로 선정되어 총 15번의 올스타전에 출전했으며, 1959년부터 1962년까지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2번의 올스타전을 개최했다.[56] 1966년 내셔널 리그 MVP를 수상했고, 내셔널 리그 이달의 선수로 3번(1960년 5월, 1967년 5월, 1969년 7월) 선정되었다. 월드 시리즈에서 피츠버그 파이리츠를 두 번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1971년 월드 시리즈 MVP로 선정되었다.[35]
통산 2번의 한 경기 3홈런,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8번의 한 경기 5안타 경기를 기록했다.[57]
범주 | G | 타율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도루 | 도루실패 | 볼넷 | 삼진 | 출루율 | 장타율 | OPS | 실책 | 보살 | 수비 | 수비율 | |
---|---|---|---|---|---|---|---|---|---|---|---|---|---|---|---|---|---|---|---|---|---|
통산 | 2,433 | .317 | 9,454 | 1,416 | 3,000 | 440 | 166 | 240 | 1,305 | 83 | 46 | 621 | 1,230 | .359 | .475 | .834 | 142 | 269 | 4,796 | .972 | [35] |
- 수위 타자 4회: 1961년, 1964년, 1965년, 1967년
- MLB 올스타전 12회 선출: 1960년 - 1967년, 1969년 - 1972년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센추리 팀 노미네이트: 1999년
- Latino Legends Team영어 선출: 2005년
- DHL 홈타운 히어로즈 선출: 2006년
- 프랜차이즈 4 선출: 2015년
- 통산 경기 수: 2433 (피츠버그 파이리츠 구단 기록)
- 통산 타수: 9454 (동상)
- 통산 안타 수: 3000 (동상)
- 통산 루타 수: 4492 (동상)
- 통산 1루타: 2154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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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례措置により、最終年から5年経過せずに被投票資格を取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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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대표적인 흑인선수는 재키로빈슨, 사첼페이지, 로이 캄파넬라,돈 뉴콤베,래리 도비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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